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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독일인의 역사인식 변화와 나치 독일의 성폭력

by 어문학사 2026. 6. 24.
무수한 나치 범죄 중에서도 성폭력은 가시화된 시기가 늦었다. 일반인들은 물론 연구자들도 오랫동안 나치 독일의 성폭력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았고, 사실이 은폐되기도 했다.

 

 

 

 

 

 

출처: 한겨레

 

 

제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점령 초기에 걸쳐 11만 명이 넘는 독일 여성이 적군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통상적이라면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침묵을 강요 당한다.

 

그러나 적군에 의해 강간을 당한 독일 여성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종전기의 강간의 경우에는 무기를 가진 병사를 상대로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명백했고, ‘독일 여성은 야만스러운 러시아인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라는 나치의 프로파간다가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매일경제

 

 

전후의 혼란이 정리되고 포로가 되었던 남자들이 돌아오면서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한 데다가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진 뒤에는 전쟁 말기의 강간 피해마저 동서 양 진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논리에 의해 규정받게 되었다. 옛 동독에서는 소련의 도덕성 우월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담론을 모두 배제했기 때문에 적군에 의한 대규모 강간에 대한 이야기는 터부시되었다.

 

그런가 하면 옛 서독에서는 개인의 피해 경험보다 ‘야만적이고 저급한 러시아인’이라는 표상을 부조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실제로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옛 서독 국민들에게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려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옛 서독 국민들 사이에서는 ‘전장에서 싸웠던 독일 국방군은 나치 범죄와 무연하다’는 ‘청결한 국방군’ 신화까지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성폭력에 대한 부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 독일에는 전쟁 중에 유대인이나 흑인과의 성행위를 엄격한 처벌대상으로 규정한 ‘인종 치욕법’이 존재했다. 실제로는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조차 인종치욕법이 존재했으므로 독일군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다. 독일군이 가해자가 되는 성폭력이 문제될 여지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출처: 한겨레21

 

 

1970년대 들어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아버지 세대의 나치 범죄 가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생겨나면서 종전기 강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지역사 연구자가 청취조사를 시작하였고, 교육 현장에서는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1980년대에는 가해의 역사를 탐구‧기록‧기억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기념비의 수도 늘어났다.

 

성폭력에 관한 이론 연구의 진전, 여성사 연구의 확산, 여성의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등에 의해 느리지만 단단히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고찰하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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