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목숨을 건 항해의 대가

by 어문학사 2026. 7. 1.
마젤란이 죽은 뒤 그가 획득한 요소요소의 귀중한 항해기록은 구름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젤란의 항해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세계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고, 지구의 넓이와 육지와 바다의 분표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출처: 구글

 

 

향로 제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겠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던 마젤란은 카를로스 1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원정 준비에 착수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항해에 나선 마젤란의 선단은 1월 25일 투아모투 제도의 북단 푸카푸카섬(마히나 환초)에 도달했다. 선단은 그곳에서 1주일간 머물며 바다새의 알로 영양을 보충하고, 빗물을 모아 식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2달여 만에 식량과 식수가 모두 바닥나고 말았다. 말루쿠 제도에서는 식량을 얻을 수 없다는 정보를 알아낸 마젤란의 선단은 북으로 침로를 수정해 필리핀 중부에 위치한 세부 섬으로 향했다.

 

4월 7일 세부 섬에 다다른 마젤란은 스페인의 상투 수단인 포교를 개시했다. 세부 섬의 왕이 부근의 수장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세부 섬의 왕을 중심으로 하여 포르투갈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권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마젤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부 섬 부근에 위치한 막탄 섬의 왕 라푸라푸를 무력으로 복종시키기 위해 49명의 무장 병력을 직접 이끌고 막탄 섬으로 향했지만 역공을 당하여 목숨을 잃고 만다.

 

선장을 잃고 선원까지 잃은 선단은 11월 8일에 겨우 말루쿠 제도에 도달했다. 티도레 섬에서 가까스로 정향나무를 구할 수 있었지만, 과욕으로 너무 많은 정향나무를 적재한 나머지 트리니다드호가 침수되어, 도중에 정향나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장 후안 세바스타인 엘카노가 지휘하는 빅토리아호 1척만이 60명의 선원을 태우고 귀국하게 된다.

 

 

 

출처: 더리포트 ​

 

 

마젤란의 항해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세계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고, 지구의 넓이와 육지와 바다의 분포를 명확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는 황태자 펠리페(후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에게 지도첩을 선물하였는데, 거기에는 마젤란의 세계일주 루트를 그린 지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도바에서 지도 제작자로 활약하던 바티스타 아니에제에게 의뢰하여 그린 호화로운 지도첩이었다. 아네에제는 무려 64년 동안 활약한 장식용 지도 제작의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황태자 펠리레에게 선물한 이 지도는 카라니아 제도에 본초 자오선을 두었고, 아시아의 동단을 왼쪽, 대륙 부분을 오른쪽에 그렸으며, 포르투갈 해도의 아프리카와 스페인 해도의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결합시켰다. 아시아 부분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의 틀에 의거하여 그렸다.

 

특히 해양 부분에 마젤란이 발견한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연결하는 세계일주의 항로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편 당시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최신 정보를 반영한 지도를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재위 1547~1559)가 황태자 시절 선물로 받은,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피에르 데셀리에의 「드팡 지도」 등은 지금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도의 세계사 | 미야자키 마사카츠

바다에서 시작된 세계사를 다룬 책이다. 전근대의 문명교류사를 새로운 시점에서 읽어내는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해도의 세계사>. 저자는 인간들이 왜 바다로 나갔고 어떻게 바다를 통해서 세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