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두 번의 석유 위기는 세계 경제를 크게 뒤흔드는 일이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강한 비용 인상 요인이 되어 불황하의 인플레이션 진행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경제 상태로 선진 공업국을 침몰시켰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은 당시까지 성장률이 예외적으로 높았던 일본에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났다.

1973년 10월 6일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은 ‘석유 위기’를 불러왔다. 이에 미국과 소련은 아랍과 이스라엘에 각각 무기를 보급하고 지원하는 한편으로 정전,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교섭을 거듭했다.
이러한 중에 16일에 전세 악화로 이집트의 안와 사다트 대통령이 정전을 제안했다. 정전 제안에 기초한 이후 중동 산유국 6개국은 교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원유가격의 21% 인상을 발표하였다.
이에 더해 국제 석유자본은 원유 가격의 3할 인상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는 판매가의 7할 인상을 통고하였다. 이러한 ‘석유 전략’은 일본을 비롯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국가에게 원유공급 제한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석유 자원의 83%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은 친이스라엘 국가로 간주되어 엄중한 석유 전략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후 안정을 되찾는 듯하던 원유 가격은 1970년대 말에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제2차 석유 위기’였다.
78년 여름부터 성황을 이룬 ‘이란의 반체제 운동’은 79년에 들어 왕정을 쓰러뜨리고 공화제로의 이행을 실현했다. 그런데 이란의 반체제 운동이 중동 지역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하면서 전 세계 석유 시장은 또다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두 번의 석유 위기는 세계 경제를 크게 뒤흔드는 일이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강한 비용 인상 요인이 되어 불황하의 인플레이션 진행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경제 상태로 선진 공업국을 침몰시켰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은 당시까지 성장률이 예외적으로 높았던 일본에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났다.
특히 성장률의 급속한 저하가 세수의 증가를 둔화시키면서 국가 재정이 국채 의존도의 상승에 의해 경직되는 문제에 직면했다. 이 영향으로 다나카 내각의 적극적인 대응에 의해 ‘복지원년’ 이라 불리며 노인 의료의 무료화 등 사회 복지 관계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이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직후부터 ‘복지 재검토론’이 대두되게 되었다. 이렇게 고성장 경제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고도성장 | 일본 근현대사 8 | 다케다 하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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