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1973년. 이 기간은 일본에게 고도경제성장의 시기로 기억된다. 경제성장의 일본 국민 생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성장은 일본 국민의 생활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냉장고, 자동차, 텔레비전 등 내구재의 소비가 늘고 교육비 지출이 커지는 등 가계의 지출 구조가 변해 갔다. 생활 면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소비혁명’이라 불렸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해도 ‘식생활’의 내용도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축산품, 과실류, 양주의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다.
‘의생활’ 면에서는 ‘필수적 의류에서 사치적 의류로의 전환’이 나타났다. 스스로 의류를 만드는 것이 가사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각 가정에 부인 잡지가 제공하는 디자인과 재봉틀이 보급되었고, 양재(洋裁) 교실이 번성했다.

집에서 옷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가사 시간의 변화’가 있었다. 가전제품의 보급이 시간에 쫓기듯이 매일 계속되던 가사일에 큰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1950년대 본격적으로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가전제품은 신소재에 의해 경량화되고, 조작성에도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가구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나의 가구로 정착한 전자제품은 가사일의 많은 영역을 커버하면서 가사노동 시간을 경감시키고 생활의 쾌적성을 향상시키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60년대 들어 새로이 내구 소비재의 인기 상품이 된 것은 일명 ‘3C’라 불린 ‘컬러텔레비전(color TV)’, '에어컨(cooler)', '승용차(car)'였다. 컬러텔레비전은 64년 도쿄 올림픽 개최에 전후하여 보급률이 급속히 높아졌다. 흑백텔레비전 보급률이 황태자의 성혼과 겹친 것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개회식과 각종 경기 모습, 맑게 갠 가을 하늘에 오륜 마크의 모양을 그려 본뜬 오색의 비행기 구름은 컬러 수상기 앞에서 많은 일본 국민의 기억 속에 남았다.
자동차는 내구 소비재 중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꿈의 위치에 있었지만, 60년대 중반 ‘3C’의 하나로서 구매 대상이 되기까지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스바루 360 등의 성능 좋은 소형차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도쿄에서만 매년 60만 명이 자동차 면허 시험을 보게 되었다. 61년 판 『아사히 연감』은 60년을 회고하며 ‘자동차 시대’라는 표제어를 달고 ‘자가용을 갖고 싶다는 염원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만인의 공통 욕망이 되었다’고 썼다.
하지만 내구 소비재가 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모두가 환영하고 열망한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살 마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저녁이 되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산 집도 있었다. 또 냉장고를 샀지만 ‘넣어 둘 것이 없어서 얼음을 얼려 뽀드득뽀드득 깨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단지(團地)에서의 가전제품 보급률이 높았던 것은 당시 일본 국민들의 구매 행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생활이 풍족해진 것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납득시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가 평균적인 풍족함 속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도 구입의 동기가 되어 급격한 보급이 진행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집도 없는 마이카 족’, ‘빌린 집에 살면서 텔레비전이 두 대’ 등과 같은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도성장 | 일본 근현대사 8 | 다케다 하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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