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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콜럼버스의 뒤에는 설탕 상인이 있었다

by 어문학사 2026. 5. 20.

대서양에 횡단항로를 개척하여 제2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이 콜럼버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한 것이 카나리아 제도의 설탕 상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출처: 제주불교신문

 

‘포르톨라노 해도’는 중세 유럽 항해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통했다. 그러나 포르톨라노 해도는 미지의 해역에 대해서는 작성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포르톨라노 해도’를 대신한 것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는 경도·위도 좌표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천체 관측을 통해 지표 위치를 정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일정한 현실감을 가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가 세계지도의 표본이 될 거라 생각했다.

 

탐험가들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를 애용했다. 제2의 세계를 향한 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 제3의 세계에 해상의 도로를 개척한 마젤란. 두 사람 모두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를 품고 항해에 나섰다. 콜럼버스는 황금의 섬이라고 불린 지팡구에서의 황금 획득을, 마젤란은 인디아스 대반도에서 말루쿠 제도에 이르는 향료무역 루트 개척을 목표로 항해를 떠났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용감한 항해가 이어지면서 해상의 도로가 만들어지고, 제1의 세계와 제2의 세계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설탕 상인’이 있었다.

 

 

 

 

출처: 한국경제

 

 

1480년대 들어 마데이라 제도에서의 ‘사탕수수 생산’은 호황을 맞았다. 1480년 한 해에만 마데이라 섬과 포르투산투 섬에 20척의 대선단과 40~50척의 중형선이 설탕을 사기 위해 방문했을 정도였다.

 

마데이라 제도의 호황을 지켜본 제노바 상인들도 카나리아 제도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카나리아 제도는 사탕수수 생산에 적합한 환경과 사탕수수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설탕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제노바 상인, 세비야 상인, 스페인 관리 사이의 네트워크도 발달하게 된다.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사탕수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제노바 출신 상인 프란체스코 피넬리와 마찬가지로 제노바 출신 상인 프란체스코 리바넬로가 설탕수수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콜럼버스의 사업에 대한 최대 출자자였다는 사실이다. 콜럼버스가 동향의 제노바 상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설탕 무역에 깊게 관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콜럼버스의 항해에 필요한 비용은 아라곤 왕국의 재무장관이자 콘베르소 출신의 거상 루이스 데 산탄헬의 자산과 아라곤 징세국의 금고, 제노바 상인 피넬리의 자산으로 충당되었다. 산탄헬은 이사벨 여왕에게 럼버스를 소개하고 항해에 필요한 경비 조달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카나리아 제도의 제도바 상인은 모두 콜럼버스의 탐험을 지원했다. 상인의 입장에서 보면 만약 탐험에 실패해도 대서양에 새로운 섬이 발견되기만 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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