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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수용소 여성을 성노예로 취급한 나치 친위대

by 어문학사 2025. 11. 25.
1990년대 들어 젠더적 관점이 도입되고 강제 성노동자들을 희생자로 인식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청취 조사 시에 젠더적 관점이 취해졌고, 피해자들에게 줄곧 따라붙었던 ‘2류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접근방식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녀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1. 기록되지 않은 성폭력 피해

 

출처: 프레시안

 

 

나치 강제수용소에 관한 회상록에는 나치 친위대가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90년대 이전까지 여성 수용자들의 치욕스러운 경험은 ‘고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젠더적 관점’이 도입되면서 회상록이나 재판 사료 등이 새로운 시각으로 읽히게 되었고, 피해자들의 인터뷰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치 친위대가 수용소에서 저지른 ‘성폭력의 양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여성 수용자들은 강간, 성희롱, 성적 학대나 고문, 강제적 단종 및 중절 , 의학적 실험, 영양실조에 의한 무월경 등의 끔찍한 경험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메스베르거(Amesberger) 이를 ‘섹슈얼화된 폭력’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섹슈얼화된 폭력’은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행사되는 폭력과 행위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모두를 문제 삼는다.

 

 

 

 

 

2. 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나

 

출처: 중앙일보

 

1990년대 들어 젠더적 관점이 도입되고 강제 성노동자들을 희생자로 인식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청취 조사 시에 젠더적 관점이 취해졌고, 피해자들에게 줄곧 따라붙었던 ‘2류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접근방식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녀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나치즘과 강제매춘』의 저자 파울에 의하면 강제 성노동자들은 피해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고통에 더해 매춘부라는 낙인을 내면화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나마도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여성들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는 그들을 나치 체제의 희생자로 인정하면서도 매춘 시설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치의 협력자라 비난했다. 나치 친위대가 매춘 시설을 통해 정치범을 타락시키려고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신뢰로 이루어진 가족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잔인했다. 남편에게 수용소에서의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가 ‘이 돼지 같은 창녀, 내가 수용소 간수였다면 너 같은 건 죽였을 텐데’라며 평생토록 비난을 받은 여성은 남편의 사후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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