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시민혁명이나 한국의 민주화운동 등의 경험이 없는 일본에게 있어 시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 내는 능동적 정신으로서의 애국심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후개혁 이후에야 민주주의하에서의 교육이 시작되었지만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애국심은 ‘패트리어티즘’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이다.
1. 공공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에 일본 고등학교에는 ‘공공(公共)’이라는 교과가 신설되었다.
공공이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가치를 뜻한다. 구성원 모두가 사회 안에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공통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공공의 발견인 것이다.
그런데 공공 교과의 학습지도요령을 보면 능동적인 사회 참여와 함께 ‘자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애국심이 보다 나은 나라를 위해 때로는 권력과도 싸울 수 있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하는 거라면 주체적인 사회 참여와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말을 일본 교육의 구체적인 문맥에 비춰가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2월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이 나고야 시립의 한 중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가졌다. 마에카와 전 차관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친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가케학원에 특혜를 줬다는 ‘가케 스캔들’을 제기한 인물로, 아베 신조 전 총리 정권에 있어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강연 소식을 들은 자민당 소속 의원 두 명은 문부과학성에 압력을 넣었다. 문부과학성은 즉각 나고야시 교육 위원회에 마에카와 전 차관의 초청 경위를 설명하고 강연 내용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정작 마에카와 전 차관의 강의는 등교 거부 학생에 관한 것으로 정치적 내용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헛짓거리한 셈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고교생들이 총기 규제를 요구하며 길거리에 나서고 있고, 유럽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책을 요구하며 데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내용과 무관한 강의에까지 압력을 넣는 일본의 환경에서 고교생들의 주체적인 사회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시바야마 마사히코 전 일본 문부과학상이 ‘점심시간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고등학생의 트윗에 대해 ‘이러한 행위는 적절한가?’하고 인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2. 내셔널리즘과 애국심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내셔널리즘은 애국심(patriotism)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 자신의 이익이 제일 우선이고, 타자는 2차라고 말하는 것에 의해,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관을, 우리들은 지워가게 된다. (....) 고립, 폭력, 내지는 지배에 의해 평화를 향한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한 만행을 하게 된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말하는 내셔널리즘은 자국의 권익만을 추구하여 세계의 질서를 흔드는 태도를 가리키고, 애국심은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태도를 말한다.
프랑스의 시민혁명이나 한국의 민주화운동 등의 경험이 없는 일본에게 있어 시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 내는 능동적 정신으로서의 애국심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에서 애국심이라는 단어는 충군이라는 단어와 일체화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주권자가 주입한 것이었다.
전후개혁 이후에야 민주주의하에서의 교육이 시작되었지만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애국심은 ‘패트리어티즘’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이다.
애국이라는 이름 하에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시좌를 쓸어버리는 것은 결국 정치의 쇄신 원동력을 소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일본 정부가 강요하는 애국심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민주주의 불가결의 원리를 파괴한다는 점을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끝나는가? | 야마구치 지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일본정치의 변화를 분석한 책이다. 증오와 공포를 이용한 강권정치에 대해 우려하는 야마구치 지로는 민주주의를 끝내지 않기 위해 사고와 행동의 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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