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촉뢰와 자폭 중
어느 쪽이 원인이라고 해도
일본 정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우키시마호는 일본 해군의 배였고,
수천 명의 조선인은 오미나토 경비부의 명령으로
우키시마호에 승선한 것이다.
가령 촉뢰가 원인이었다고 해도
기뢰(機雷)의 위치를 기입한 해도(海圖)를
소각한 것은 누구였는가?
일본 정부의 책임은 분명하다.❞
1945, 마지막 항해 | 시나다 시게루
광복으로부터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8월 22일, 일본의 오미나토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출항했다. ‘한국 부산항’을 향해 항해하던 이 배는, 그러나 목적지 근처에도 닿지 못한 채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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