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원전 사고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연재해와 인위적 재해가 복합된 대재해는 일본인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았다.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진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15시 35분에는 13미터의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의 일본 동북 지역을 덮쳤다. 이 영향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은 모든 교류전원을 상실했다. 이튿날인 12일 오후에는 1호기의 원자로 건물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고 2호기와 4호기가 연이어 폭발, 건물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대량의 방사선과 방사성 물질이 발전소 밖으로 퍼져나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인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위기를 맞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도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어쩌면 믿었다기보다도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신화의 또 다른 이름은 무관심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스리마일섬, 체르노빌에 이어 설계 당시의 예상 피해를 뛰어넘는 인류 최악의 세 번째 사고였다. 자연재해와 인위적 재해가 복합된 대재해를 겪고서야 일본인들은 원전 사고를 자신에게 닥친 위기로 받아들였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반년 후인 2011년 9월에 아사히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여서 미래에는 가동 수를 제로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77%나 되었다. 또한 요미우리 신문사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와 ‘전부 폐기’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70%에 달했다.
다른 매체의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나타났다. 2011년 10월에 NHK방송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줄인다’가 42.3%, ‘전부 폐기’가 24.3%였다.
조사결과를 보면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또는 관심을 둔다고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재해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미디어에는 ‘유대’와 ‘분단’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했다. 지진 피해와 원전 재해 후 일본의 미디어에서는 ‘힘내라 일본(頑張ろうニッポン)’, ‘유대(絆)’라는 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絆’라는 한자는 친밀한 관계성을 가진 인연의 끈을 의미하는데, 원전 사고 이후에 재해지에 대한 배려를 촉구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힘내라 일본’이라는 응원의 말도 마찬가지 기능을 했다. 지진 피해와 원전 재해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라도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진피해와 원전 재해가 과도하게 연대를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과거부터 지속된 일본의 분단을 가속화시켰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전 재해를 둘러싼 사회적 분단은 만화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그중에서도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만화 『맛의 달인(美味しんぼ)』이다. 『빅코믹스프리트』 2014년 5월 12일‧19일 통합 호에 게재된 「후쿠시마의 진실 편」에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한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오염제거 작업이 끝나도 후쿠시마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연구자의 발언도 소개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진실 편」의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잘 다뤘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정부 인사들은 ‘풍평피해를 부추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했고, 후쿠시마현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곤혹스럽게 한다.’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원전 재해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방사선으로 인한 환경 피해나 건강 피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여론은 여전히 둘로 나뉘어 있다.
핵과 일본인 : 알라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촉발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저자인 야마모토 아키히로는 ‘일본 사회는 핵에너지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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