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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이제야 살았다? -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기사회생한 일본 경제

by 어문학사 2025. 6. 25.

일본 자본주의는 그 출발부터 제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면서 전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도약을 이루었던 일본 경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흔들리던 일본 경제를 일으킨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출처: 세계일보

1914년 6월 28일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계의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1914년 7월 28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 동맹(英日同盟)에 근거하여 연합국측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 예상치 못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에 일본은 19억6천만엔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부채와 불경기여파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본은 유럽이 무역을 제한한 틈을 타 연합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군수품과 식료품을 수출하는 기회를 잡았다. 또한 선박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본의 해운업과 조선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일본 경제는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물가 폭등, 도쿄주식시장 폭락 등이 동시에 터지면서 일본 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처: 동아일보

 

아이러니하게도 기울어져 가던 일본 경제를 일으킨 것은 또다시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발발 후 한 달도 안 돼 국제연합군이 참전하고 같은 해 11월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한국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한국전쟁이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미국은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을 출동시켰다. 일본이 한국전쟁의 전략물자 보급기지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의 전략물자 보급기지가 된 일본은 이를 위한 비용을 미국으로부터 달러로 지불받았다.

 

 

 

출처: 구글 ​

 

 

당초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일회성 반짝 호황 정도로 생각했지만, 한국전쟁은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가 단번에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호기를 맞게 된 것도 이때이다.

 

도요타는 태평양 전쟁 당시 군수공장으로 지정돼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패전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현금흐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총자산가치의 여덟 배에 이르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이에 도요타는 도산을 피하기 위해 전 직원이 임금을 삭감하는 정책까지 실시하였지만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도요타에게 한국전쟁은 기사회생의 기회가 되었다. 도요타가 법정관리에 들어간지 20일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미군은 도요타에 군사용 트럭 1천 대를 한꺼번에 발주하였다. 그리고 도요타는 이를 발판으로 삼아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한국전쟁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것은 도요타 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발발 전만 하더라도 물건이 팔리지 않아 허덕이던 파나소닉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군용트럭에 들어가는 선반의 폭발적인 수요에 밤샘작업을 해야 될 정도였고, 일본 국적항공사 JAL은 일본 최초의 항공사로 자리 잡았다.

 

그야말로 어려운 형편에 행운을 얻게 된다는 고사성인 맹귀우목이 적절하게 들어맞는 상황이다.

 

 

 


 

 

 

 

일본 경제 고민없이 읽기 : 알라딘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봉건국가에서 서구 자본주의 사회로 급속히 전환하였으며 패전 후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역사적인 연속성 속에서 오늘날의 일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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