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상상력과 영상 기술이 뒷받침되어 탄생된 영화는 오늘날 로봇 공학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영화가 보여주는 문제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윤리적인 로봇이란 무엇인가?
최근 로봇 공학계의 화두는 ‘윤리적인 로봇’이다. 그런데 윤리적인 로봇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윤리적 행위자라고 하면 합리적 이성을 통한 합리적 숙고 속에서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위 하는 인간 행위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로봇이 그와 같은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흉내 낸다면 그 로봇은 윤리적인 로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행위의 완성이 행위자 스스로의 숙고와 판단, 실천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할 때, 현시점에서 로봇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적 행위를 흉내 낸다거나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직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강인공지능은 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한 영역에서 고도의 자동화 업무를 특출나게 수행할 수 있는 약인공지능이 만약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위한다면 그것은 인간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윤리적 로봇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인간에게 위협을 가한다든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행위하는 로봇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로봇이라 평가받을 것이다.
2. 윤리적인 로봇은 정말로 탄생할 수 있을까?
윤리적인 로봇을 만드는 일은 실제로 가능할까? 우리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혹은 인공지능형 로봇을 통해 현실에서 윤리적 로봇을 구현하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영화 속 인공지능로봇은 공상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인공지능 혹은 로봇 공학의 발전과 비교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두 영화는, 지금껏 수많은 공상과학적 콘텐츠들이 그래왔듯,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먼저 이야기해 볼 영화는 <아이언맨2,3>(2010,2013)이다. 아이언맨에는 자비스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자비스는 특정한 형체가 없는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자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주변 상황이나 주인인 토니의 감정을 고려해서 자율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활동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비스는 토니가 아이언맨으로 활약할 때에는 수트의 안정성에 집중하지만, 평소에는 토니의 기분을 살펴 농담을 건네거나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런 점에서 자비스는 약인공지능보다 강인공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비스는 결코 토니의 명령에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자비스는 언제나 토니의 말에 복종하며 토니의 조력자로서 일할 뿐이다.
<아이언맨>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로봇 앤 프랭크>(2012)에도 인공지능형 로봇이 등장한다. 이 로봇은 치매를 앓는 70대 할아버지 프랭크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건강을 관리한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던 프랭크도 점점 로봇에 동화되어 간다.
한편 프랭크는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과거 절도범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로봇과의 생활에 적응해가던 프랭크는 로봇이 자신보다 금고를 터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프랭크는 로봇과 절도 계획을 세우고 비밀을 공유하면서 친구가 되어 간다. 로봇이 할아버지의 도우미에서 절도 파트너가 되버린 셈이다.
<로봇 앤 프랭크>에서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거나, 자신의 정체를 의심한다든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에게 윤리적인 로봇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와 비교해봤을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사이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자비스는 인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인류의 선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로봇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반면, 프랭크의 로봇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도움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인 로봇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비스와 프랭크의 로봇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엇갈리게 된 것은 그것들이 처음부터 윤리적 혹은 비윤리적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사용하는 주인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인공지능 내지는 인공지능로봇을 만들고 또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윤리적인 로봇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비윤리적인 로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윤리적 로봇의 가능성은 인공지능 내지는 인공지능로봇을 직접 설계하고, 배치하며, 활용하는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즉,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배포하는데 연루된 다양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에게도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윤리하다
인공지능(AI)은 우리 생활에 이미 친숙하게 다가와서 쓰이고 있다. 실생활에서 이미 쓰이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은 AI 윤리이다. 인공지능은 ‘위임된 자율성’ 혹은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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