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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열화되는 리더십

by 어문학사 2024. 7. 8.
국유지가 수상의 지인이 경영하는 학교법인에 헐값에 매각되었다. 수상이 국회 답변에서 자신이나 아내가 매각에 관련되었다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한 발언을 받들어 재무성의 담당부서에서는 수상 부인이 관여하고 있는 것을 기록한 공문서가 사후적으로 위조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국회에서 수상에게 불리한 질문을 한 자는 누구라도 바보가 된다. 리더십의 열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파행이다.

 

 

 

 

 

 

 

1. 부조리극화된 국회

 

출처: 한겨레

 

 

2018 5 14일에 있었던 중의원 예산 의원회에서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공동대표가 아베 전 수상에게 대륙간 탄도 미사일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다마키 의원의 질의가 이어지던 중 자민당 의원들은 야유를 보냈고, 혼란 중에 제한 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아베 전 수상이 끝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이다.
 
현행 헌법하에서는 원칙적으로 야당 의원의 질의나 언론의 정권 비판에 대해 정부가 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탄압을 하지 않더라도 말의 의미를 붕괴시키며 의논을 불가능하게 하면 비판하는 측은 제풀에 지쳐 비판을 그만두게 된다. 아베 정권이 발명한 21세기형 언론 탄압이다.
 
이러한 정치 현상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부조리극 속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는 서로 통하지 않고, 말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모리모토가케학원 의혹에 대해서 악폐를 도려내겠다는 아베 전 수상의 발언, 기억하는 한이라는 말을 가져오면 어떤 거짓을 말해도 상관없다는 야나세 다다오 전 총리비서과의 발언. 모두 부조리극 속의 대사나 다름없다.
 
한편 일본 국민들도 부조리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2018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아베 수상이나 야나세 다다오 전 비서관의 해명으로 가케학원 문제의 의혹이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다.’ 83%, ‘의혹이 해명되었다.’ 6%, 모리토모학원이나 가케학원을 둘러싼 의혹해명에 아베 정권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은 75%, ‘적절히 대응했다.’ 13%였다. 권력자의 부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나 그것이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 권력의 사물화와 가산제 국가 

 

출처: 오마이뉴스

 

 

리더십의 열화는 권력의 사물화를 초래한다. 권력의 사물화는 근대적인 법의 지배로부터 전근대적인 가산제 국가로의 역행이기도 하다.
 
법의 지배란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할 때에는 항상 법의 근거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리이다. 특히 인권을 제약하는 권력행사에 있어서 법의 지배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가산제란 권력자의 사적재물과 국가의 공공물 사이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고, 권력자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국가의 재물을 소비하거나 권력을 행사하거나 할 수 있는 체제이다.
 
아베정권하의 일본에서는 국유지를 거저나 다름없이 수상의 지인에게 양도하고, 사인(私人)인 것이 틀림없는 수상부인의 사적활동에까지 공무원 몇 명이 동행했다. 그야말로 가산제 국가로의 역행이다.
 
가산제 국가에서는 또한 권력자와 관료 사이에 신분적 예속관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주군이 흰 것을 검다고 말하면, 가신도 흰 것을 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가신이 법에 기초하여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군의 사적 이해(利害)나 감정을 포함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모리토모학원 국유지의 염가판매에 관한 공문서가 위조되고, 관료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허위 답변을 했다. 이 과정에서 아베 전 수상이 부패의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를 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명시적인 지시가 없어도 주군의 심정을 헤아려 행동한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관료제이다.

 

 


 

 

 

 

민주주의는 끝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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