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만주사변 이후 일본 정부가 전쟁의 늪으로 빠진 과정을 예로 들며, 일본 권력기구의 본질을 ‘무책임의 체계’라 특징지었다. 여러 실패는 교훈이 되지 못한 채 무책임의 체계는 전후에도 살아남았고, 국민들은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1. 만연하는 관료주의와 무책임
개혁은 본디 관료조직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급관청으로부터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작문경쟁에 모두가 몰두하고 있다. 형태가 훌륭한 기획서가 만들어진 반면 본래 업무가 열화되고 있는 것은 관료주의의 병폐 그 자체이다. 관료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오히려 관료주의의 병폐를 심화시킨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발상에서는 수량적인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업무 평가를 실시한다. 이러한 기준으로 조직의 성과를 평가하게 되면 의사적인 평가 척도가 실제적인 평가 척도로 변질된다. 학교에 있어서의 교육의 성과는 학력테스트의 평균점으로 측정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존재 이유는 관객 동원 수로 평가되는 것이다.
한편 정량적인 평가기준의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는 관료제의 또 다른 병폐인 목표의 전이와도 결부된다. 목표의 전이란 관료조직에 있어서 본래의 정책목표가 등한시되어, 수단이 목표가 되는 병리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일본의 통신산업성과 경제산업성이 추진했던 에너지 확보라는 정책에 있어서 원자력 발전은 원래 하나의 수단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원전의 유지‧확대가 목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의 목표의 전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금전으로 환산되는 것이야말로 가치의 전부라는 오만한 단순화와, 관료주의는 간결한 목표가 오로지 자신에 있어 전부라는 나태한 단순화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눈앞의 목표를 최대한다로 달성하면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시스템의 유지 가능성이나 사회에 대한 영향은 전부 도외시하게 된다.
2. 위협받는 국민 안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 의해 정부의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정부의 기능의 열화가 진행되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러한 일본 권력기구의 본질을 ‘무책임의 체계’라 특징지었다.
그는 만주사변 이후 일본 정부가 전쟁의 늪으로 빠진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주체적인 정책을 입안‧결정한 당사자가 어디에도 없고, 조직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다는 자기규제가 만연하는 중에, 무모한 정책이 형성되어 전쟁의 늪에 빠지게 된 점을 지적했다.
여러 실패는 교훈이 되지 못한 채 무책임의 체계는 전후에도 살아남았고, 21세기에 들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이다.
2006년 12월 22일 공산당의 요시이 히데카쓰 중의원으로부터의 질문주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면, 아베 신조 당시 수상은 지진 등으로 외부 전력을 상실했을 때의 냉각기능의 유지 체제, 쓰나미 발생 시의 원자로냉각을 위한 비상용 전원 상실이 일어날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지적한 것과 같은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답변서를 작성한 것은 경제산업성의 관료이다. 그들은 안전대책을 위해서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부작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충분한 대책을 취하고 있다고 자부한 것이 원전 사고라는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중, 3중의 무책임의 체계가 존재하는 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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