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서 본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완아이화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던 역사학자 이시다 요네코는 일본군의 거점이었던 산시성 위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피해 여성들로부터 “오는 게 너무 늦어. 할 작정이면 제대로 하라”라는 말을 들은 그는 “이 청취를 확실히 기록으로 남기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함으로써. 이야기되는 피해의 실태를 많은 일본인에게 전해야만 한다”고 결심한다.
1. 이시다 요네코의 청취 실천
중국근현대사 연구자 이시다 요네코는 1996년 8월 오카야마시(岡山市)에서 개최된 증언 집회에서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완아이화의 모습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중국 현지 조사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이전까지 피해 여성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이시다 조사팀의 방문을 계기로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훗날 이시다 요네코는 일본군의 거점이었던 산시성 위현을 방문함으로써 중일전쟁의 최전선의 전장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시다 조사팀은 선행연구에 근거한 구조화 혹은 반구조화된 청취를 실행하여 상당한 양의 자료를 축적해 나가는 종래의 청취조사 방법을 택하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정에 착목하면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청취조사 방법을 택했다. 하루에 네 시간씩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반복해서 축적하는 것이 이 청취 작업의 핵심이었다.
이시다 조사팀이 택한 청취 방법은 중요한 특징을 가진다. 피해 여성들은 이시다 조사팀이 방문한 것을 계기로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괴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왜 그때 반항할 수 없었을까 하면서 자신을 책망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책망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그녀의 의식을 속박하는 공동체 의식이 그녀에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시다의 분석이다. 이처럼 이시다 조사팀의 청취에는 그때 그곳에서의 체험이 공동체의 규범에 의해 해석되고 있고,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이야기되고 있다는 당시 구술사론의 최첨단 식견이 드러난다.
또한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청자의 태도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시다는 잘 알고 있었다. 피해 여성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공감하면서 양쪽의 신뢰관계가 깊어지고 화자와 청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직면해야 하는 과거가 공유되기 시작한다. 몇 차례의 구술청취 속에 화자 쪽에서도 청자 쪽에서도, 피해 여성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있다고 이시다는 지적한다.
다시 말해 구술청취라고 하는 것은 어떤 개별의 관계의 변화라는 프로세스 속에서만 존재하고, 피해 여성의 인생은 청자와 화자의 긴 대화의 가운데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이다”라고 하는 지적은, 그야말로 사쿠라이 아쓰시가 주장하는 대화적 구축주의에서의 ‘대화’와 다름없다.
2. 해방으로서의 청취
이시다가 이끄는 조사팀이 이 청취 조사에서 목표로 한 것은 피해를 당한 화자와 가해국 쪽에 속한 청자의 대화 속에서 그 경험의 의미가 피해 여성들에 의해 이해‧요해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그녀들이 전시 성폭력 피해자라는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시다에 따르면 “전시 성폭력 피해와 같은 트라우마적 경험에 관한 청취는 당사자의 심신 속 지울 수 없는 체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나 감정을 해방하는 과정이 될지 여부에 좌우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억압되어 있는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복해서 자신의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피해 상황이나 마을에서 일어난 일도 알게 됨으로써, (피해 여성들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거나 마을의 일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피해 여성들이 비록 일본어를 알지는 못할지라도, 일본에서의 집회의 기록이나 보도 등의 비디오를 봄으로써, 자신의 신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마을 전체나 중일전쟁에서의 중국의 피해라고 하는 큰 문맥 속에 놓고 보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중국 마을에서의 지속적인 청취 조사나 일본에서 개최된 집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사실을, 그녀의 피해를 받아들이면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가운데 인식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피해 여성들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함께 인정하고, 잊고 싶은 “과거가 이야기”되는 것에 의해 그 과거와 직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이처럼 신뢰 가능한 청자에 의한 지속적인 청취의 실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운동이나 재판투쟁까지 포함한 활동 가운데에서 피해 여성들은 트라우마적 경험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그야말로 피해 여성, 청자, 그리고 지원자에 의한, 피해 여성을 해방하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모델 스토리)의 구축’이고 그 획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라는 관점에서 점령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부의 위치를 살핀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연애, 매춘, 강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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