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정부는 일본을 근대국가체제로 개혁한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하여 천황을 신격화하고, 천황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신성불가침한 통치자로서의 천황의 이미지를 일반 대중에게 침투시켰다.
1. 일본인들의 신관
1970년 11월 25일 도쿄에 위치한 육상자위대 동부 지부의 2층 발코니에서 ‘일곱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나라에 보답하겠다.’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한 남자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일본의 얼을 유지하는 것은 자위대뿐이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피와 문화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너희들은 사무라이들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단 말인가. 나를 따를 사람은 없는가.” 목이 터져라 연설하고 있던 남자는 세 차례나 오른 작가 미시마 유키오였다.
당시 발코니 앞에는 천여 명의 자위대원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중 그를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에 깊은 절망을 느낀 미시마는 미리 준비해 갔던 단검으로 자신의 배를 갈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치 일본 중세 시대의 사무라이들처럼 말이다.
할복(割腹)은 전쟁에서 패배한 수장이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사무라이들이 미리 정해 놓은 규칙에 따라 자신의 복부를 깊게 가르고, 보조자가 뒤에서 무사의 머리를 베어주는 자살방법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지만, 극우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군사대국 일본의 부활을 외쳐왔던 극우주의자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패배는 곧 수치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오늘날에도 동북아 국제외교관계에서 전쟁의 책임 문제를 논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2. 신토이즘 정치
근대화를 추진하고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식의 국가체제와 국민통합이 필요하였던 메이지 정부는 이 과정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천황제를 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이토는 일찍이 서양 국가들의 산업화 성공의 배경에 정신적 지주로써 기독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일본 역시 국민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천황제를 도입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하에 천황가는 일본민족의 조상이며 신의 자손으로서 일본열도와 일본민족을 지배해왔다는 논리를 만들었고, 천황은 현인신이라는 창작신화를 교육시켰다. 일본국의 군대는 천황의 통솔하에 있다는 내용의 군인칙유를 전국 군인들에게 하달하였고, 교육칙어를 제정하여 이를 학생들이 암송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또한 메이지헌법을 선포하면서 천황주권과 천황의 절대 권력을 제도화하였다. 메이지헌법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력자인 천황이 신민들에게 권리 의무사항을 하사하는 형식의 헌법이다.
더 나아가 신사를 종교 활동에서 분리하여 신도를 확립했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종교 활동이 아니라 일본민족의 관습이고 국민의 도의라며 신사에 대한 행정을 정부가 맡고 신도의 수양을 가르치는 수신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국사신도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한 나라를 통치하고자 할 때에 하책은 군대에 의해 무력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중책은 법에 의해서 다스리는 것이고, 상책은 종교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다. 메이지 정부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전해지는 신화를 바탕으로 천황을 신격화하고 천황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여 신성불가침한 통치자로서의 천황의 이미지를 일반 대중에게 침투시키는 것으로 이를 철저히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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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깊은 감정 골보다는 한반도에서 지정학적·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으로, 그리고 세계사의 관점에서 미군의 각종 보급과 병참의 통로인 일본으로서 일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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