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에 행해진 악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책임과 사죄의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1. 마우마우(Mau Mau) 추모비
2015년 9월 케냐 공화국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에 있는 공원에서는 1950~1960년대 독립전쟁을 전개한 전사들과, 대영제국 식민지 정청에 의해 수감되어 고문을 받거나 살해당한 자들의 유족, 케냐 일반시민들이 한 동상 제막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케냐의 독립투쟁에서 폭력으로 진압된 피해자와 유가족 5,228명은 2013년 사죄‧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동상은 소송에서 내려진 사법결정에 따라 영국정부가 세운 것이다. 재판에서는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는데, 합의 내용에는 영국 정부의 ‘통절한 뉘우침(profound regret)’의 공식표명과 함께 3,000억여 원 규모의 피해자구제기금 조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남아 있다. 새로운 배상청구소송은 2016년에 심의가 시작되었다.
식민지주의의 폭력과 불의에 대해 국경을 넘어 비교하는 것은 자칫 식민지주의가 행해온 만행에 대한 추악한 자국 정당화와 부딪힐 위험성이 있다. “다른 식민지주의 세력이 저지른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가 팽창정책 하에서 한 것은 훨씬 낫다. 병원을 지었다. 학교교육을 보급시켰다. 교통‧통신망 등을 정비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이 결코 자국의 식민지주의 본질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 지구를 덮은 식민지주의제국은 어떤 의미에서도 차별‧배제‧불평등 그리고 노골적인 폭력에 의해 지배당한 것임이 분명하고, 이러한 부정적인 유산을 인지하여 과거의 불의를 시정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가해자‧피해자 쌍방 간에 상호이해와 화해의 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연루(連累, implication)라는 개념
식민지주의를 둘러싼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 비추어 일본을 뒤돌아보면, 우파라 불리는 사람들의 일본식민지주의 역사를 바꿔 쓰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패전한 지 70년이 되던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전후 70년 담화」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적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부분에서 수많은 일본국민의 공감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전후세대가 바야흐로 인구의 80퍼센트를 넘고 있습니다. 그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자손, 그리고 그 다음세대 후손들에게 계속 사죄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패전 후에 태어난 세대에도 전(前) 세대가 저지른 전쟁과 불의에 대한 책임과 사죄의 의무는 존재하는 것일까?
영국에서 태어난 A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그런데 영국은 과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애버리진에 대해 학살과 수탈을 저질렀다. A에게 ‘죄’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A는 ‘연루(連累, implication)’되어 있다. A가 애버리진 학살을 직접 행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정당한 대응이 없었던 과거의 박해에 의해 성립된 사회에서 생활하고 수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에 행해진 악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행해진 악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그것을 궤멸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과거의 증오와 폭력, 역사적 거짓으로 칠해진 차별과 배제는 사회 속에 살아남아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애버리진은 차별과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바다를 건너간 위안부
4명의 일본인 학자가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우파와 일본정부의 해외 전개의 실태와 배경까지 낱낱이 설명한 책이다. 일본 우파와 정부는 한일 문제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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