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이 죽은 뒤 그가 획득한 요소요소의 귀중한 항해기록은 구름처럼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젤란의 항해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세계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고, 지구의 넓이와 육지와 바다의 분표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1. 태평양 횡단과 마젤란의 죽음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등위도 항법으로 태평양 항해를 해 나갔다. 마젤란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항해사였지만 태평양 횡단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젤란의 선단은 1월 25일 투아모투 제도의 북단 푸카푸카섬(마히나 환초)에 도달했다. 선단은 1주일간 그곳에 머물며 바다거북과 바다새의 알로 영양을 섭취하고, 스콜로 내리는 빗물을 식수로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고난의 항해가 계속되었고, 3월 4일에는 끝내 식량이 바닥나고 말았다.
한편 4월 7일 세부 섬에 도착한 마젤란은 세부 섬의 왕이 부근의 수장 중에서 가장 권력이 세다는 것을 알고, 스페인의 상투 수단인 포교를 개시했다. 포르투갈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권을 필리핀 군도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마젤란은 49명의 무장 병력을 이끌고 상륙했으나, 오히려 1,000명의 병사에게 역공을 당해 목숨을 잃고 만다.
마젤란이 죽고 난 뒤 선원들은 트리니다드호와 빅토리아호에 나누어 타고 출항하여 11월 8일에서야 말루쿠 제도에 도달했다. 티도레 섬에서 가까스로 많은 정향나무를 샀지만, 너무 많은 정향나무를 적재한 나머지 트리니다드호가 침수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선장 후안 세바스타인 엘카노가 지휘하는 빅토리아호 1척만이 60명의 선원을 태우고 귀국하게 된다.
힘든 항해 와중에도 마젤란은 아시아의 대척경계선의 위치를 밝히려고 하였고, 요소요소에서 부정확하게나마 경도의 측정을 계속해 나갔다. 항해자이자 해도 제작자로서의 프로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귀국 과정 중에 마젤란이 획득한 요소요소의 귀중한 항해기록은 구름처럼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젤란의 항해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세계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고, 지구의 넓이와 육지와 바다의 분표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2. 세계지도에 마젤란의 항로를 그리게 한 황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는 황태자 펠리페(후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십육 세가 되던 해 그에게 지도첩을 선물했다. 당시 베니스에서 명성을 떨치던 지도 제작자 바티스타 아니에제에게 그리게 한 호화로운 지도첩이었다.
지도 전체는 타원형으로 그려졌고, 카라니아 제도에 본초 자오선을 두었으며, 아시아의 동단을 왼쪽, 대륙 부분을 오른쪽에 그렸다. 또한 지도의 아시아 부분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의 틀에 의거하여 그렸으며, 거기에 포르투갈 해도의 아프리카와 스페인 해도의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결합시켰다.
해양 부분에서는 스페인의 자랑인 마젤란이 발견한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연결하는 세계일주의 항로가 그려져 있으며, 동시에 스페인의 부의 원천인 스페인 카디스 항구에서 카리브 해, 파나마 지협을 넘어 태평양, 페루에 이르는 은 운반선의 항로가 그려져 있었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루트를 그린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편 당시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최신 정보를 반영한 지도를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재위 1547~1559)가 황태자 시절 선물로 받은,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피에르 데셀리에의 「드팡 지도」 등은 지금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도의 세계사
바다에서 시작된 세계사를 다룬 책이다. 전근대의 문명교류사를 새로운 시점에서 읽어내는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해도의 세계사>. 저자는 인간들이 왜 바다로 나갔고 어떻게 바다를 통해서 세
www.aladin.co.kr
'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퓰리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0) | 2024.05.16 |
---|---|
서태평양의 산호초 군락은 금세기에 사라질 것이다 (1) | 2024.05.13 |
청어가 만든 해운 대국 (0) | 2024.05.08 |
진정한 사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0) | 2024.05.07 |
금융기관을 괴롭힌 부실채권과 잃어버린 30년 (1) | 2024.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