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4일 낙동강의 구미 지점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인 페놀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출된 페놀 원액은 배수구를 통해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낙동강 물을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대구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1.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낙동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해 남해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낙동강 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유역은 적은 강우량과 산업 단지의 영향으로 수량과 수질 조건이 매우 열악하다.
1991년 3월 14일 낙동강 구미 지점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인 페놀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먼저 이상 현상이 감지된 곳은 낙동강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대구였다.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이상을 호소해 원인을 추적한 결과 상류 지역의 공단에서 페놀 유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들의 혀와 코가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감지기 역할을 한 셈이다.
사고를 일으킨 곳은 구미공단에 위치한 두산전자였다. 두산전자는 페놀 원액을 저장탱크에서 생산 공정으로 공급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사용하던 지상 파이프가 고장나자 예비용 지하 파이프를 대신 사용했다. 그러나 예비용 파이프 연결부에 이상이 생겨 페놀 원액 약 30톤이 유출되었고, 유출된 원액은 배수구를 통해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페놀은 중금속과 더불어 자주 문제가 되어온 물질로, 각종 암을 유발하고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당시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호소했다. 대구에서만 총 1,617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될 정도였다. 그러나 두산전자는 시민들의 피해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한편 두산전자에 조업 정지를 명령했던 정부는 돌연 조업 재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섣부른 조업 재개는 제2차 페놀 유출 사고로 이어졌다. 시험 운전을 거쳐 정상 가동을 하던 중 지상배관 이음새 고장으로 페놀 원액 약 1.3톤이 또다시 유출된 것이다. 연이은 유출 사고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의 파장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환경 재난 사례 중 사회적 파장이 가장 컸던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서둘러 조업 재개를 결정한 환경부 장관과 환경부 차관은 강제 사직 당했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7명의 공무원들이 구속되었다.
사건 당사자인 두산전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이는 두산그룹 제품에 대한 전국적인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두산전자는 220여억 원을 배상하고, 환경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페놀 기업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선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편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환경운동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이후 정부는 강력한 물 관리 대책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하수처리장 건설, 하수관로 정비, 오염하천 정화 등과 같은 주요 환경기초사업들이 추진되었으며, 오염총량관리제, 수변지구 지정, 상수원 보호구역 토지매입, 자동측정망 설치, 유역통합관리시스템 등과 같은 선진 물관리 제도와 기술이 도입되었다.
환경재난과 인류의 생존전략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다양한 형태의 환경 재난을 발생 배경과 원인, 전개 과정, 결과와 피해, 후속 대책 등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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