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진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15시 35분에는 13미터의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의 일본 동북 지역을 덮쳤고, 후쿠시마 제1원전은 모든 교류전원을 상실했다. 이튿날인 12일 오후에는 1호기의 원자로 건물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고 2호기와 4호기가 연이어 폭발, 건물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대량의 방사선과 방사성 물질이 발전소 밖으로 퍼져나갔다.
그때까지 일본인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위기를 맞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반년 후인 2011년 9월에 아사히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여서 미래에는 가동 수를 제로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77%나 되었다. 또한 요미우리 신문사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와 ‘전부 폐기’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을 합치면 70%에 달했다. 심지어 같은 해 9월에 실시된 마이니치 신문사의 조사에서도 ‘위험성이 높은 것부터 운전을 정지시키고, 조금씩 숫자를 줄여간다’가 60%, ‘가능한 한 빨리 전부 정지시킨다’가 12%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인 198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줄인다’와 ‘멈춘다’는 의견을 전부 합쳐도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반된 조사 결과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가 일본인들의 의식에 미친 영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또는 관심을 둔다고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 원전 재해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사람들은 각지에서 원자력발전소에 관해 의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중문화도 원전 재해라는 충격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본의 대중문화에 원전을 둘러싼 찬반의 대립을 가져왔다면,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재해 이후의 대중문화는 찬반의 논의가 아니라 원전과 함께 살아온 자신들의 인식을 되묻고 미래의 전망을 여는 시각을 제기했다.
한편 지진 피해와 원전 재해 후 일본에서는 ‘유대(絆)’라는 말이 빈번하게 미디어에 등장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일본에서 ‘絆’라는 한자는 친밀한 관계성을 가진 인연의 끈을 의미하는데, 지진 피해 후 재해지에 대한 배려를 촉구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진 피해와 원전 재해가 과도하게 연대를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과거부터 지속된 일본의 분단을 가속화시켰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해지의 잔해를 수용하기로 결정한 지자체 주민이 불안을 호소하며 지자체의 결정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재해지라고 불리는 지역 내부에도 수많은 분단선이 있었다. 피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의식의 차이가 있었고, 방사선 오염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대피할지 말지, 그곳에서 아이를 키워야할지 말지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분단되어 있던 재해지 내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원전 재해를 둘러싼 사회의 분단 역시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먹방 만화의 대표적인 작품『맛의 달인(美味しんぼ)』(『빅코믹스프리트』, 1983-)이다. 『빅코믹스프리트』 2014년 5월 12일·19일 통합 호에 게재된 「후쿠시마의 진실 편」에서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한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실재하는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해 원전 사고 이후에 코피를 흘리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한다. 또한 오염 제거 작업이 끝나도 후쿠시마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연구자의 발언도 소개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진실 편」을 둘러싸고 ‘잘 다뤘다’라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정부 인사들은 ‘풍평피해를 부추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했고, 후쿠시마현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곤혹스럽게 한다.’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원전 재해로부터 1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사선으로 인한 환경 피해나 건강 피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여론은 둘로 나뉘어 있다.
핵과 일본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촉발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저자인 야마모토 아키히로는 ‘일본 사회는 핵에너지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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