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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학사 소식

[농민신문] “조상님들도 무더위는 못 참지”…물 찾아 즐기던 ‘유두절’

by 어문학사 2026. 7. 28.

다시 보는 세시풍속 –음력 6월15일 유두(流頭)

신라 때부터 내려온 여름 풍속

양반은 탁족, 백성은 천렵 즐겨

부침개 부치며 병해충 쫓고

기우제 지내며 풍년 기원

 

 

올해 유두절은 7월28일이다.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챗GPT

 

 

여름의 뜨거운 무더위를 겪다보면 시원한 해변과 계곡, 짜릿한 워터파크가 떠오른다. 이런 더위에 물을 찾아 더위를 식히려는 마음은 조상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 중심에 있던 우리 전통 명절이 음력 6월15일 유두(流頭)다.

 

 

 

1. 신라 때부터 시작한 물의 명절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줄임말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동쪽은 해가 뜨는 만큼 양기가 가장 왕성한 방향으로 여겼고, 이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면 액운을 떨치고 여름 내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소두(梳頭)·수두(水頭)라고도 표기했는데, 신라의 옛말을 이두로 옮긴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문헌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랜 기록은 ‘동국세시기’가 인용한 고려 학자 김극기의 글이다. 김극기는 경주의 옛 풍속을 두고 “6월 보름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적었다. ‘고려사’에도 명종 15년(1185) 6월15일, 관리의 감찰을 맡은 시어사 두 사람이 환관 최동수와 함께 광진사에 모여 머리를 감고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2. 목욕, 특별한 날에나 하던 것

 

유두가 왜 특별한 날이었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목욕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살펴야 한다. 고려시대만 해도 목욕은 자유롭고 빈번했다. 고려 인종 원년(1123)에 사신으로 다녀간 중국 송나라 문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인들은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냇물에서는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몸을 씻었다”고 기록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노출을 꺼리는 유교적 관습 탓에 목욕문화가 쇠퇴했다. 세수·양치나 손발 씻기 등은 매일 했지만 온몸을 씻는 전신욕은 특정 시기에만 했다. 그 시기가 음력 3월3일(삼짇날), 5월5일(단오), 6월15일(유두), 7월7일(칠석), 7월15일(백중) 등이었다. 즉 유두는 ‘오랜만에 머리를 감는 날’이 아니라 한 해 중 모처럼 ‘제대로 씻는 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목욕을 하더라도 옷을 입은 채 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 양반은 발 씻고 백성은 물고기 잡아

 

같은 유두라도 신분에 따라 하루 풍경은 사뭇 달랐다. 양반들은 의관을 갖춘 채 시냇물이나 계곡에 발만 담그는 탁족(濯足)을 즐겼다. 체면상 옷을 벗고 냇물에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자나 누각을 찾아 술과 안주를 마련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놀았다.

 

반면 양민과 노비에게는 그런 체면치레가 없었다. 이들은 옷을 벗고 그대로 냇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 천렵(川獵)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여성들의 물맞이 장소는 따로 있었다. 대개 산속 계곡이나 폭포를 찾아 몸을 씻었는데 서울의 정릉계곡, 광주의 무등산 물통폭포, 제주의 한라산 성판봉폭포 등이 대표적이었다.

 

 

4. 기름 냄새로 벌레를 쫓던 제삿상

 

농가에서 유두는 약식 제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김용갑 전남대학교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이 제사는 유두차례·유두제·밭제·유두천신·참외밭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다만 제사라고 해도 형식은 대체로 소박해 큰 상을 차리는 대신 돗자리나 짚을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올리곤 했다. 논이나 밭, 물꼬 앞이 제단인 경우도 많았다.

 

제사 음식을 보면 유독 부침개가 많이 올랐는데, 이는 기름 냄새를 풍기면 병해충이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충북 단양 적성면에서는 이날 논에 나가 부침개를 부쳐 던지며 “벌레들아, 이거 먹고 벼는 먹지 마라”고 외쳤다. 청주 월오동과 진천 덕산면에서도 참외밭 안에서 부침개를 부치며 풍년을 빌었다.

 

 

5. 벼·과일 잘 자라도록 바란 간절함

 

기우제 성격을 지닌 의례도 있었다. 경북 상주에서는 논에 물이 마르지 않기를 비는 ‘덤봉제(용제)’를 지냈는데, 날이 가물지 않아도 일꾼이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은 채 제사를 올렸다. 비 올 때 입는 차림을 하고 있으면 비가 내린다고 믿는 주술적 의미가 담겼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지역마다 달랐다. 경남 산청에서는 주인이 제물을 준비한 후에 머슴이 논으로 가져가 물꼬에 제사를 올렸고, 전북 진안과 무주에서는 남자들만 논을 돌며 고사를 지냈다. 반면 충북 진천과 전남 보성에서는 여성들이 나서서 제사를 주관했다.

 

김용갑 선임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양반 등 상류층은 유두에 더위를 피해 쉬면서 잔치를 즐길 수 있으나, 농민 입장에서는 밀·보리 등 밭농사를 마친 후에 과일과 벼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며 “우리 고유의 명절이 단순히 피서에 그치지 않고 농민들의 간절함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처 및 원문: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article/20260727500588

 

 

[도움말: ‘다시 쓰는 한국 풍속’(김용갑·박혜경 지음, 어문학사)]

 

 

다시 쓰는 한국 풍속 | 김용갑.박혜경

풍속이란 예로부터 한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나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양상을 말한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 시기와 연결될 수 있는 민속 현장의 지역 풍속을 한데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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