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상인과 콜럼버스
대서양에 횡단항로를 개척하여 대서양과 남북아메리카대륙으로 이루어진 제2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그 유명한 콜럼버스다. 그런데 탁상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에 의한 콜럼버스의 항해를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이 이익에 밝은 카나리아 제도의 설탕 상인이었던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1. 기획가 콜럼버스를 후원한 설탕 상인
대항해시대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포르톨라노해도는 통상의 원양항로를 그리는 데에는 적합했지만 육지의 배치도 모르는 미지의 해역에 대해서는 작성할 수 없었다. 이와 비교해 부감적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는 미지의 해역과 육지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가 세계의 견본지도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2의 세계를 향한 해상의 도로를 개척한 콜럼버스도, 제3의 세계의 해상의 도로를 개척한 마젤란도 모두 이 잘못된 세계지도에 배신당하고 만다. 콜럼버스는 황금의 섬 지팡구의 황금 획득과 진해에서의 무역 독점을 목표로 했으며, 마젤란은 인디아스 대반도를 우회하여 말루쿠 제도에 이르는 향료무역의 루트를 개척하고자 했으나 양자 모두 좌절을 맛본 것이다.
비록 무모한 시도였지만, 항해가 반복되면서 서서히 해상의 도로가 만들어졌고, 제1의 세계와 제2의 세계가 서로 연결되었다. 수차례 이루어진 항해의 배경에는 착실하게 이익을 얻은 엔리케 항해 왕자의 사업이 있었다. 엔리케 항해 왕자의 사업의 진전과 함께 대서양의 여러 섬의 개발로 부를 축적한 설탕 상인이 성장하였고, 그들은 콜럼버스의 사업을 지원하게 된다.
2. 발견이라는 환상
스페인 궁정에 연줄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콜럼버스는 아라곤 왕국의 재무장관이자 콘베르소 출신의 거상 루이스 데 산탄헬의 도움으로 스페인 여왕 이사벨과 직접 회견하게 된다. 콜럼버스의 계획은 왕실의 자문위원회에 의해 어설픈 계획이라며 거부당했지만, 산탄헬의 노력 덕분에 이사벨 여왕과 산타페협정을 체결하고 스페인의 해양제독에 임명된다. 산탄헬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사탕수수를 제배하는 제노바 상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이었다.
콜럼버스는 산타페 협정에서 이익을 보장받자마자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항구 파로스에 가서 3척의 배와 약 90명의 선원을 수배하여 항해에 나섰다.
지팡구 섬이 카나리아 제도와 같은 위도이며 서쪽으로 약 3,4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생각한 콜럼버스는 카나리아 제도의 고메라 섬의 산 세바스찬 항에 입항했다. 선단은 그 후 약 1개월 동안 그란카나리아 섬에 머물렀는데, 이는 겨울의 복동 몬순이 불기 시작하는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콜럼버스가 예상한 대로 선단은 뒤쪽에서 부는 몬순의 도움을 받으며 순조로운 나아갔다. 그러나 누구도 항해한 적이 없고, 목표물도 없는 대양을 항해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36일간의 불안에 가득 찬 항해 끝에 선단은 카리브 해의 변두리에 위치한, 바하마제도의 선주민이 과나하니 섬이라고 부르는, 작은 산호초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신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섬을 신의 은혜라는 의미의 산 살바도르라 명명했다.
콜럼버스에게 있어 대서양 횡단의 성공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도착한 바다가 중국 북부의 동방에 펼쳐진 중국해가 틀림없다고 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승부는 여기서 부터였다. 콜럼버스가 추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막대한 금을 산출하는 황금의 섬 지팡구였다. 지팡구 섬은 중국해의 섬 중에서도 특출나게 큰 섬이라고 했으므로 간단하게 발견될 터였다.
3개월간의 행해 끝에 아이티 섬을 지팡구라고 판단한 콜럼버스는 그 섬을 이스파니올라 섬이라고 명명했다. 이스파니올라 섬에서는 족장이 황금의 장신구를 차고 있었다. 황금의 산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족장은 섬의 중앙부 시바오라고 답했다. 시바오를 지팡구라고 잘못 들은 콜럼버스는 이스파니올라 섬이야말로 지팡구가 틀림없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말았다.
사방팔방으로 대서양과 카리브 해를 항해했던 콜럼버스는 수많은 해도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만든 해도는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콜럼버스의 해도는 재산으로서 관리되다가 항해와 탐험이 진행되는 와중에 시대착오적인 해도로 판단되어 폐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일하게 이스파니올라 섬 북부의 해안선을 메모한 듯 그린 간단한 해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해도의 세계사
바다에서 시작된 세계사를 다룬 책이다. 전근대의 문명교류사를 새로운 시점에서 읽어내는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해도의 세계사>. 저자는 인간들이 왜 바다로 나갔고 어떻게 바다를 통해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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