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전례 없는 권력 집중이 낳은 부작용

어문학사 2025. 5. 19. 17:29
국유지가 수상의 지인이 경영하는 학교법인에 헐값에 매각되었다. 수상이 국회 답변에서 자신이나 아내가 매각에 관련되었다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한 발언을 받들어 재무성의 담당부서에서는 수상 부인이 관여하고 있는 것을 기록한 공문서가 사후적으로 위조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국회에서 수상에게 불리한 질문을 한 자는 누구라도 바보가 된다. 권력 집중이 낳은 민주주의의 파행이다.

 

 

 

 

 

 

1. 권력의 사물화와 가산제(家産制) 국가

 

출처: 연합뉴스 ​

 

 

리더십의 열화는 ‘권력의 사물화’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아베 신조 정권하의 일본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권력의 사물화는 ‘근대적인 법의 지배’에서 ‘가산제 국가’로의 역행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의 지배란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할 때는 언제나 법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징세나 형사 사법 등 인권을 제약하는 권력 행사에 있어서 법의 지배는 특히 중요하다.

 

이에 반해 가산제(家産制)란 권력자의 사적 재물과 국가의 공공물 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고, 권력자가 사적인 목적을 위해 국가의 공공물을 소비하거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체제이다.

 

아베 정권하의 일본에서는 국유지를 거저나 다름없이 수상의 지인에게 양도하고, 사인(私人)인 것이 틀림없는 수상부인의 사적활동에까지 공무원 몇 명이 동행했다. 그야말로 가산제 국가로의 역행이다.

 

또한 근대 국가에서의 권력자와 관료의 관계가 법에 기초한 지휘명령관계인 것에 반해 가산제 국가에 있어서의 권력자와 관료의 관계는 신분적 예속관계이다. 다시 말해 근대 국가에서 관료가 법적 근거 없이 위정자의 지시에 따르면 안 되는 것에 반해 가산제 국가에서 관료는 주군의 사적 이해(利害)가 포함된 명령에 복종한다.

 

아베 전 수상이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공문서가 위조되고, 관료는 국회에서 거짓 답변을 하였다. 일본의 관료가 권력자에게 신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가신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관료제이다.

 

 

 

 

 

2. 부조리극화된 국회

 

출처: 뉴시스

 

근년 일본 국회는 한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하다. 2018년 5월 14일 열린 중의원 예산 의원회에서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공동대표는 아베 전 수상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미일(美日)은 백 퍼센트 일체라 강조하였으나 북미정상회담에 있어서 북한이 ICBM급의 미사일 폐기를 약속하면 미국은 본토에 대한 위협이 없어졌다하여 만족하고, 교섭성립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근거리 미사일이 남아 있으면 일본에 있어 위협은 계속된다. 이 점에 대해서 수상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의 안보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다마키 의원의 질문이 이어지는 중 자민당 의원들이 야유를 보냈고 아베 전 수상이 답변하지 않은 채 제한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야유를 보내며 날카로운 질문을 유야무야 넘긴다. 의회정치의 파탄이다.

 

현행 헌법하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나 언론의 정권 비판에 대해 정부가 탄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탄압을 하지 않더라도 말의 의미를 붕괴시키며 의논을 불가능하게 하면 비판하는 측은 제풀에 지쳐 비판을 그만두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의 노림수일 것이다.

 

이러한 일본 국회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부조리극 속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는 서로 통하지 않고, 말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모리모토‧가케학원 의혹에 대해서 악폐를 도려내겠다는 아베 전 수상의 발언, 기억하는 한이라는 말을 가져오면 어떤 거짓을 말해도 상관없다는 야나세 다다오 전 총리비서과의 발언. 모두 부조리극 속의 대사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불행히도 일본 국민들도 부조리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2018년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아베 수상이나 야나세 다다오 전 비서관의 해명으로 가케학원 문제의 의혹이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다.’가 83%, ‘의혹이 해명되었다.’가 6%, 모리토모학원이나 가케학원을 둘러싼 의혹해명에 아베 정권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은 75%, ‘적절히 대응했다.’는 13%였다. 권력자의 부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나 그것이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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