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이라는 정의와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일본 사람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신문사나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다시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풍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류국이라는 환상이 있다.
1. 무너진 안전신화와 의식의 변화
일본인들은 만화나 영화 속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위기를 맞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해외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도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왔다. 사실 믿었다기보다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안전신화’란 이처럼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상실과 건물 폭발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안전신화를 완전히 무너뜨린 엄청난 사건이었다. 재해 발생 직후부터 미디어는 재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들은 지진 재해를 자신에게 닥친 위기로 받아들였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반년 후인 2011년 9월에 아사히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여서 미래에는 가동 수를 제로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77%나 되었다. 또한 요미우리 신문사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와 ‘전부 폐기’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을 합치면 70%에 달했다.
신문사 조사 외에 2011년 10월에 NHK방송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원전과 에너지에 관한 의식조사’의 결과도 마찬가지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줄인다’가 42.3%, ‘전부 폐기’가 24.3%로, 이른바 탈원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체의 60%를 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줄인다’와 ‘멈춘다’는 의견을 전부 합쳐도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일본 사람들의 의식에 미친 영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제까지 원자력발전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또는 관심을 둔다고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원전 재해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2. 탈성장이라는 정의와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다시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풍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물론 원전을 새로 설치하지 않는 한, 지금 있는 원전은 몇 년 후에는 폐로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도 탈원전의 과정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2월에 발표된 「에너지기본계획정부안」을 보면, 그런 이해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기본계획정부안」은 선순환으로 들어서고 있는 경제와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에너지 수급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정책의 방향성으로 신중한 유보를 언급하면서도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의 규제 기준에 적합하다고 인정한다면, 그 판단을 존중해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을 추진한다.”라고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안에 호응하듯이 가고시마현 가와우치 원자력발전소는 원전 사고 이후에 만들어진 안전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안전 심사의 결과를 내세워 재가동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사히 신문사가 같은 해 7월 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3월에 실시한 원자력발전소의 전반적인 재가동을 묻는 여론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반대가 59%에 달했음에도 정‧재계와 지자체의 주류파는 재가동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원자력발전소를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사고방식’이 있다. ‘일류국’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원자력발전소를 가동시켜서 경제적인 타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전 총리였던 호소가와 모리히로는 ‘원자력발전소 제로’를 내걸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연대했지만, 득표수는 3위에 그쳤다. 그러한 결과는 탈성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심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탈성장 논의는 올바른 것이지만, 그러한 정의가 반드시 지지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 일본사회의 모습이다.
핵과 일본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촉발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저자인 야마모토 아키히로는 ‘일본 사회는 핵에너지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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