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글로벌 자본주의가 무제한적으로 확산되면서 특권이나 불평등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에너지로 하는 강한 대항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포퓰리즘이 시사하는 바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포퓰리즘을 둘러싼 논쟁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가 무제한적으로 확산되었다. 경쟁 원리의 해석이 개혁이라 불리었고, 강자에 의한 경제적 자유가 추구되었다. 그 결과 격차와 빈곤이 확대되었다.
여기에 2010년대 들어 우파 포퓰리스트가 득세하였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은 이민배척, 소수자에 대한 차별, 근대적인 인권의 이념을 부정하는 언동을 반복했다.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입장으로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부정의 대상이다.
그러나 해외 이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블루컬러 노동자, 저임금으로 생활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세계화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빈곤과 격차에 마주하여 싸우려는 정당이 우파 포퓰리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샹탈 무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회복시키면서도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전선의 구축을 주장한다. 좌파 정당을 내측에서부터 쇄신하는 움직임, 기성 정당의 외측에서부터 나와 시민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 등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2.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민중당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가 급격히 진행된 19세기의 미국에서는 탄광업경영자층에 부가 집중되었고 농민은 피폐헸다. 포퓰리즘은 농민들의 불만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를 원하는 정치운동으로서 시작되었다. 당시 민중당은 제3당이었으나 민중당의 이러한 움직임은 독점금지법 등의 경제 규제의 실현, 정당의 민주화의 의한 기성정당에 있어서의 보스지배 타파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포퓰리즘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미국의 경험은 21세기의 민주정치의 있어서의 포퓰리즘의 의미와 한계를 생각하는 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을 그저 노동력으로 취급하며, 대통령이나 부유층으로의 부의 집중을 쉴 새 없이 진행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해, 즉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부딪히는 것이 정치전환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의를 향한 정념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모르는 데에 포퓰리즘의 위험성이 있다. 본래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민자나 소수민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나 전통적인 도덕으로부터 일탈하는 소수파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정의로 내세우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정의(正義)의 정의(定議)를 신중히 하는 것과, 포퓰리즘의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의 양립을 꾀하는 것이, 서민에 봉사하는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그때 비로소 포퓰리즘의 본래의 평등지향과 민주주의는 상호배반적인 개념이 아닐 것이다.
또한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평등을 갈구하는 서민감정을 받아들여, 그것을 건설적인 정책전환으로 이어가는 정치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영국, 미국의 좌파 포퓰리즘은 노동당이나 민주당이라는 기존정당에 있어서의 리더십의 획득이나 정책전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정선거에서 다수를 점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조직과 많은 후보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권을 획득한 뒤에는 정부를 장악하는 인재와 능력이 필요하다. 역시 이러한 점에서 정당이라는 기존의 틀은 지금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당에 대한 시민참가를 확대하여, 광범위한 논의를 통하여 평등을 회복하는 정책을 확립하는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 재생의 길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끝나는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일본정치의 변화를 분석한 책이다. 증오와 공포를 이용한 강권정치에 대해 우려하는 야마구치 지로는 민주주의를 끝내지 않기 위해 사고와 행동의 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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