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전범재판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어문학사 2024. 3. 12. 17:35
재판받은 범죄는 거의 일부였을 뿐이며 재판받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한 일본인의 변명에만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재판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재판이었을까?

 

 

 

 

 

 

 

1. 증거 인멸

 

출처: 인뉴스TV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기로 결정한 직후부터 공문서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각지에 주둔한 군과 경찰이 보유하던 내무성이나 외무성에 기밀문서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렸고 중요한 공문서가 소실되었다. 일본이 공문서를 불태운 목적에는 전범 추궁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렇게 증거를 인멸한 뒤에는 전국 규모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한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위장 공작을 해서 속이려고 했다.
 
추크섬에서 미군 포로를 살해한 혐의로 31(일본 기록에는 29)이 기소되어 재판받은 사례가 있다. 일본해군부대의 항복을 받아 낸 미 해병대는 일본군 장병을 이것저것 심문하였으나 결국 포로에 대한 범죄 정보를 얻지 못했다. 미 해병대는 궁리 끝에 해병대의 한국계 병사를 밤마다 조선인 노무자 캠프에 보냈고, 일본군이 포로를 처형한 정보를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제4근거지대 사령관 이하의 31명이 기소되었다.
 
중부 태평양의 웨이크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00명의 미군 포로를 해안에서 총살한 사건에 대해 현지 해군경비대는 포로 반절은 폭격을 받아 사망했고 나머지 반은 공습 당시 무기를 빼앗아 도주를 시도했으나 끝내 투항을 거부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이것도 후에 거짓임이 밝혀져 경비대 사령 등 3명이 재판을 받았다.
 
한편 중국인 강제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을 부린 토목건설업 단체인 일본건설공업통제는 중국인 강제 노동 문제가 전범으로 추궁당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조합 내부에 화선노무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중국인 학대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처하였다.
 
GHQ와 중국 측이 일본 정부에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자 1946년 외무성은 사망 원인을 조작하여 혹사당한 사실을 알 수 없게 각색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외무성은 이 보고서를 전범 문제 자료로 사용할지 도 모른다는 이유로 태웠다고 대답했으나 1990년대 들어 도쿄화교총회가 은밀히 보관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례들은 그나마 수사당국이 위장 공작임을 알아차리고 재판한 건이지만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2. 법정에서의 변명

 

출처: 경향신문

 

 

중국의 남경재판에서 노다 쓰요시 소위와 무카이 도시아키 소위가 사형에 처해졌다. 이른바 백 명 베기를 벌였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남경으로 진군하는 도중에 두 소위가 중국인을 일본도로 베어 죽이는 경쟁을 하여 둘 다 백 명 이상을 죽였다는 신문 보도가 조작이라고 주장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 후에 다수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우리는 범죄 용의자들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죄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증언이나 증거에 비추어 피고의 말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전범재판에 대해서는 갑자기 그러한 절차를 잊고 일본인의 변명에만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침략자는 항상 자신을 정당화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기 때문에 몇 겹으로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피해자의 괴로움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지가 전범재판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BC급 전범재판

저자 하야시 히로후미는 “일본계 일본인 남성”, 즉 ‘전쟁범죄 가해국’의 시민으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불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조심스럽고 냉철하게 사실을 짚어 이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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