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농학교 졸업생이 통감부 기사 자격으로 조선에 건너갔다. 그 배경에는 삿포로농학교의 식민 정책 및 아이누 정책이 있다. 농학교에서 강의한 식민학, 사쓰마벌의 도청 고관들이 초래한 아이누 민족의 고난. 아이누 민족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민족 자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1. 아이누 민족에 대한 차별
개척사 시대 초기 아이누 민족은 공동어업을 통해 민족의 공유재산을 축적했다. 이 시기 아이누 민족이 축적한 공유재산은 오늘날로 보면 억 단위의 큰 재산이었다. 아이누 민족이 이 정도로 큰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근세부터 근대 초기에 걸쳐 막부나 마쓰마에 번(松前藩)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화인(和人, 일본인)의 손이 미치지 않은 내륙을 중심으로 ‘민족의 주체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누 민족의 공유재산은 관리 위탁을 맡은 기관의 부정과 난잡한 운영 탓에 계속 감액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홋카이도청이 발족한 이후 도청의 관리였다. 사쓰마벌의 이사관들이 홋카이도제마회사와 삿포로제당회사라는 어용회사를 설립했을 때 도청 이사관들이 위탁 관리하던 많은 아이누 민족 공용재산이 두 어용회사의 주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두 어용회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 부진에 빠지면서 홋카이도 각지의 아이누 민족이 큰 피해를 입었다.
가령 히다카의 아이누 민족은 어업조합으로 강력한 공영조합을 구성했지만, 제당회사의 주권이 완전히 가치를 상실함으로써 큰 경제적 피해를 입고 조합을 해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누 민족 공동재산 분쟁에서 당연히 책임자로 거론 되어야 할 이들의 이름은 이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 아이누 민족의 자치자영운동
제국 의회에서 제당회사의 부실 경영을 추궁하고 하시구치 분조가 사직한 이듬해인 1892년, 도카이치 아이누 312호(戶)는 아이누 민족 총회를 종종 개최했다. <홋카이도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이들은 오쓰구라노스케를 대리인으로 뽑아 구시로 군장에게 악폐를 호소하는 청원서를 냈다.
청원서의 요점은 “우리 아이누는 상당한 재산(아이누 민족 재산)이 있는데도 압제를 받고, (관청의) 속박 하에 신음하며 자영생활의 길(아이누 민족의 어업)이 저해되어, 중죄인에 대한 치산을 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는 것이다.
청원서 제출을 비롯한 ‘아이누 민족의 민족운동’은 끈질기게 계속되어 이듬해인 1893년 도카치 외 4군의 ‘고민재산관리법’으로 첫 결실을 맺었다. 군장이 공동재산을 관리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장부 규칙의 제정, 아이누 민족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할 것 등 관리 방식이 개선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1894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도카치 아이누 민족 가운데 나카가와 군의 아이누 민족 135호가 관에서 공동재산을 돌려받아 ‘재산보관조합’을 만들었다. 재산보관조합은 아이누 민족 자신의 자치자영조합이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도카치 아이누 민족 조합은 아이누 민족 자치자영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나카가와 군 아이누 민족 조합의 운용이 시작된 1895년 1월, 히다카 사루 아이누 민족 상롯테가 상경하여 제국 의회에서 홋카이도전역에서 벌어지는 ‘아이누 정책의 악폐’를 열거하며 진정했다. 그 중심 내용 중 하나는 역시 도카치 아이누 민족의 공동재산 문제였다. 이에 따라 홋카이도청 장관은 방대한 자료가 첨부된 변명서를 제국 의회에 제출해야 했다.
히다카 아이누 민족의 행동은 도카치 아이누 민족의 자치자영운동에 대한 ‘원호 사격’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누 연설회가 열려 홋카이도뿐만 아니라 됴코나 게이한신 지구에서도 많은 청중을 모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차별에 맞선 아이누 민족의 자치자영운동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메이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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